[2021년] [이봉수의 참!]‘평범한 악’도 단죄해야 하는 이유

2023-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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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수의 참!]‘평범한 악’도 단죄해야 하는 이유 이미지 1 


영국과 프랑스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규범국이 된 이유를 나는 ‘시민이 왕의 목을 날린 나라’라는 공통점에서 찾는다. 왕도 민심을 거역하면 목이 잘렸으니 영국은 명예혁명을 거치며 민주주의 역사를 썼고, 프랑스는 시민혁명 뒤 공화주의를 뿌리내렸다. 나치협력자 청산도 철저했다. 영국 중도신문 인디펜던트는 나치전범과 협력자들을 끝까지 추적해 ‘마지막 나치스’(2008년 8월2일)란 특집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1면에는 수배전단처럼 생존자들 사진을 실었는데 제일 나이가 많은 이는 95세였다. 역사에는 시효도 동정도 없다는 보도 태도다.


전두환은 잠깐 투옥된 뒤 자신의 행적을 정당화하는 회고록을 썼다. 고 조비오 신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지만 재판에도 잘 안 나온다. 추징금 970억원을 안 냈으면서도 자식들은 재벌처럼 산다. 목이 달아난 찰스 1세나 루이 16세에 견주면, 전두환은 정권의 정통성도 없고 저지른 악행도 컸지만 떵떵거리며 산다.


지난 27일 경기도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에 들렀다. 오래전부터 참배를 별러 온 데다 ‘민주화운동 자료를 찾습니다’라는 김동민 소장의 페이스북 글을 봤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 기자 노릇을 하면서 모은 각종 단체의 성명서와 책자 등 70여종을 기념공원에 넘겼다. 당시 ‘불법’ ‘불온’ ‘빨갱이’ 딱지가 붙어 내용이 제대로 보도된 것은 드물었다. 이화여대에 프락치로 투입된 여경이 학생들에게 붙잡혀서 쓴 자술서 사본도 포함돼 있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 여경 시험을 봐서 경찰이 됐지만 그런 임무에 투입된 것이다.


기념공원에는 민주화보상위원회가 인정한 136명 중 60위 열사가 모셔져 있는데, 내가 사망기사를 쓴 김세진 열사 등도 잠들어 있다. 그와 이재호 열사는 1986년 4월28일 반외세·반독재 시위를 벌이던 중 경찰이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하자 강경진압을 막으려다 분신했다. 그들은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져 5일째 되던 날 김세진, 28일째 되던 날 이재호가 숨졌다.


기념공원은 민주화운동사에 기록된 열사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전시기법이 뛰어나고 흥미로운 교육프로그램도 많아 민주주의 역사를 실감나게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은 ‘91년5월투쟁 30주년 기획전’이 10월 말까지 열리고 있다. 그러나 방문객 수는 지난해 5682명에 이어 올해는 27일까지 3830명밖에 안 된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연간 3만명이 안 돼 ‘민주주의 산 교육장’이 잊혀지고 있다는 아쉬움이 크다.


알베르 카뮈는 소설 <페스트>에서 ‘악은 언제나 무지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는 또 ‘구제불능인 악덕은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고 그럼으로써 스스로에게 사람을 죽일 권리를 인정하는 따위의 무지함이다’라고 썼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진 시대의 수많은 동족살인은 무지와 광기가 빚은 참극이다. 5·18 때 계엄군이던 이경남 목사의 증언은 당시 군이 민주화에 관한 이해가 없었고 ‘시위대는 좌경·용공’이란 세뇌교육을 받아 시민을 난폭하게 살상했음을 말해준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은 악용하면 안 된다. 아렌트는 명령에 따라 유대인을 죽였다는 아이히만 같은 악행을 누구나 저지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겠지만, ‘평범한 악’도 처벌하지 않으면 무한반복된다. 독립투사를 고문하던 헌병 박종표가 반민특위 해체 뒤 마산경찰서 경비주임이 되어 고교생 김주열 눈에 직격으로 최루탄을 쏜 것은 드라마보다 기구한 우리 역사다. 연세대생 이한열과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도 최루탄 직사로 숨졌다.


피해자는 짧은 인생을 마감하고 ‘공원’에 묻혀 있는데 가해자가 드러나지 않고 처벌받은 이도 거의 없는 현실은 악행의 무한동력이 된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를 만든 검찰, 인혁당·부림회·오송회·금강회·아람회 등 고문으로 무수한 용공·간첩 사건을 조작한 경찰과 검찰, 사법부의 가해자들은 법의 심판과 반성은커녕 명단조차 역사 앞에 드러난 자가 거의 없다.


편제가 확실한 정규군과 경찰이 작전명령에 따라 저지른 살인이고 검경과 사법부의 국가공무원이 저지른 범죄들인데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악의 세력에게 용기를 주는 짓이다. 촛불시위 당시 기무사가 친위쿠데타를 꿈꾼 것도 ‘평범한 악’을 단죄하지 않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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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601030007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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